끊임없는 자신과의 대화 – 서정배의 작품에 대한 소고
고홍규(홍익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

서정배의 작품에 등장하는 소재는 그리 많지 않다. 주인공처럼 작품에 등장하는 한 소녀, 그리고 종종 그 소녀와 함께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을 제외하면 나무나 실내 공간 등 매우 제한적인 배경만 있을 뿐이다. 아마도 작가는 그만큼 주인공 소녀에 집중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관객 또한 그 소녀에 주목해 주길 바란 것은 아닐까.

키키(Kiki).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 소녀의 이름이다. 작가는 키키(Kiki)라는 가상의 인물에 대해 그녀가 만난 사람, 주변의 이야기, 그날의 기분 등 키키의 일상을 「검은 담즙(La Bile Noire)」이라는 제목의 노트에 기록하였다. 이 노트에 따르면 키키(Kiki)는 상상하기를 좋아하는 꿈꾸는 몽상가이며, 프랑스에 살았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키키(Kiki)는 일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작가가 작품에 그려내고 있는 키키(Kiki)의 모습은 「검은 담즙」에서의 모습과 사뭇 그 느낌이 다르다. 무표정한 얼굴로 관객을 바라보는 키키(Kiki). 특별히 우울해 보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행복해 보이지도 않는다. 아니. 조금 우울해 보이는 편에 가깝다. 작품에서 키키(Kiki)는 나체이거나 혹은 매우 편안한 얇은 옷차림을 하고 있다. 혼자 골똘히 공상을 하거나 자신만의 공간에서 무언가를 열망하는 듯하다. 간혹 다른 인물들과 함께 있기도 하지만, 그들은 화면 속 각자의 공간에서 자신만의 자리를 차지하며 마치 혼자인 듯하다.

「검은 담즙」의 기록에서 키키(Kiki)는 분명 서정배 자신의 모습이다. 프랑스에 살았고, 당당히 일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작품에서 내가 본 키키(Kiki)의 모습은 내가 아는 서정배의 모습과 잘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작품 속 키키(Kiki)의 모습에는 내가 아는 서정배의 쾌활함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 같달까. 왜 작가는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며 키키(Kiki)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고, 우울함을 상징하는 「검은 담즙」이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그리고 왜 결국 작품에서 작가의 분신인 키키(Kiki)는 우울한 모습으로 그려졌을까.

나는 이 지점에서 키키(Kiki)가 등장하는 공간에 주목하게 되었다. 텅 빈 실내 혹은 탁 트인 야외 등으로 묘사되는 배경의 공간. 빈 공간으로 아무 소재도 그려지지 않은 의미 없는 공간으로 보였던 배경이 어쩌면 무언가로 가득 차 있는 그 무엇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말이다. 그렇게 보니 키키(Kiki)를 둘러싸는 공간들은 단순한 붓질로 채워진 배경이라기보다 수차례의 붓질로 생동감 있게 그려진 알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단순한 배경이 아닌, 오히려 무언가의 기운으로 꽉 차 있는 공간이랄까. 어쩌면 이는 키키(Kiki)가 상상하고 몽상하는 다양한 것들, 그리고 그가 꿈꾸고 바라는 형상화 할 수 없는 그 무엇들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우울해 보이는 키키(Kiki), 그리고 그 주변으로 꽉 찬 그의 공상과 꿈. 그렇다면 결국 작품 전체가 작가 서정배가 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이렇게 볼 때 서정배의 작품은 끊임없는 자신과의 대화이다.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며 키키(Kiki)라는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 자기를 객관화하고, 이를 작품으로 형상화함으로써 키키(Kiki)를 그리지만 결국 키키(Kiki)를 포함한 작품 전체가 작가 자신이 되는 순환과정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작가가 작품을 통해 주목하고 싶었던 것은 키키(Kiki)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키키(Kiki)를 둘러싼 모든 것에 작가의 모습과 이야기가 담겨있을 터이다. 어쩌면 서정배는 관객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수많은 나의 모습에서 당신은 나의 어떤 모습을 보고 있는가 하고 말이다.

Constant conversation with oneself

Essay on works of Seo Jeong-Bae

Ko Hong-Kyu

 (Professor of Hongik University, Graduate School of Education)

 

Seo Jeong-Bae’s works don’t adopt many different materials. Apart from the girl as a protagonist and some people surrounding the girl, we can only see very limited background such as trees and indoor space, etc. Wouldn’t the artist intend to concentrate on the girl? And wouldn’t she also like the public to pay the biggest attention to the girl?

 

Kiki. That’s the name of the girl-protagonist. The artist created a fictional character, Kiki, and recorded the elements of her everyday life, for example her encounters, stories around her and her feelings, in a note called “La Bile Noire (The Black Bile)”. According to this note, Kiki is a dreamer who loves to imagine and has lived in France. She lives her daily life encountering various people.

 

But Kiki that the artist describes in her works seems quite different from who she seems to be in La Bile Noire. She stares at the viewers with hardly any facial expression. Not looking depressed, but not looking happy either. Slightly closer to the depression than happiness. In the works, Kiki is either naked or very lightly dressed. She looks like fantasizing or longing for something in her own space. Sometimes she is with someone, but they occupy their own respective space on the screen, so they look alone.

 

In the notes of La Bile Noire, Kiki reflects certainly the artist Seo Jeong-Bae herself. Having lived in France, she is living her everyday life confidently. But the image of Kiki I see in the works is not quite identical with the artist that I know. In the image of Kiki portrayed in the works, I cannot find the cheerfulness of the artist at all. Why did the artist create a fictional character to record her own everyday life, and title it La Bile Noire, which means ‘melancholy’? And why eventually has Kiki, the persona of the artist, been portrayed as someone melancholic?   

From this perspective, I came to pay attention to the space where Kiki makes her appearance. Empty indoor space, or open outdoor space. This empty space without any materials painted, which seems to be meaningless at a glance, could be a space full of a certain thing. When I see again the space from this viewpoint, the space surrounding Kiki is not just a setting filled with simple brush strokes, but rather filled with vitality created by the numerous brush strokes. Not a simple background, but rather space full of a kind of energy. This may be what Kiki always imagines and fantasizes, dreams and hopes, but difficult to visualize. Kiki looks melancholic, and her imagination and dream fill all the space surrounding her. After all, the whole work can be the artist herself.

Seen from this aspect, the works of Seo Jeong-Bae are a constant conversation with herself. She records her own daily life, objectifies herself by creating her other self which is Kiki, and forms all this into an artwork. Eventually, drawing Kiki means the infinite cyclic process where the entire work becomes the artist herself. I also figure out Kiki was not actually the very target to which she really wants to pay attention. It is in fact everything surrounding Kiki that contains the artist and her story. Seo Jeong-Bae may be asking the question to the viewers: among all these numerous facets of myself, which one are you looking 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