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배의 끝나지 않는 멜랑콜리

이윤희(청주시립미술관 학예팀장)

 


서정배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길고 긴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확실한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지도 않으면서도, 어쩐지 모호하고 우울하며 외로운 기분을 느끼게 한다. 한 사람으로 인식되는 인물이 지속적으로 등장하면서도 특별한 사건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고, 하루의 어떤 순간을 무작위로 정지시켜 보여주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장면들에는 오묘한 감정들이 담겨있는 듯 보인다. 그의 그림 속에는 축 쳐지는 음악이 흐르는 듯 하고 담배연기가 자욱하며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과 그로 인한 피로감이 지속되는 중이다.
사실 철없는 어린 아이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지나치는 시간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느끼는지 모두 표현하면서 살 수는 없다. 서정배의 그림 속 쭈그리고 앉은 인물이 느낄 법한 ‘무겁게 가라앉는 기분’ 같은 정서를 실제 삶 속에서 드러내고 표현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세상에 우울하지 않은 인간은 없고, 그것을 표현해본들 별다른 대책이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든 상실과 실패를 맛볼 것이고 종국에는 뼈저린 후회를 하며 죽어갈 것이다. 실제의 인생 속에서는 자신의 삶을 해석하고 가치를 매길 수 있는 명확한 도덕률도 알 수 없고, 더 나은 삶에 대한 열망이나 인생을 알차게 살아가기 위한 계획조차도, 그것이 설령 성취된다 하더라도 허무감에 빠지기 십상이다. 자신이 희생해서 세계가 진보하리라는 장밋빛 희망도 이 시대의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세계를 직시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극복되어야 할 기질로 여겨지는 것이 사실이다. 오늘날 각종 병명의 우울증 환자가 넘쳐나는 것도, 이러한 비극적 세계관이 당연히 극복되어야 할 양상으로 진단되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들은 세계의 톱니바퀴가 되어 활기차게 자신의 인생을 사회 속에 갈아 넣을 것을 권유받으며, 더 이상의 사유가 불가능할 정도로 빠르게 변화되는 세계상에 적응하느라 인생의 대부분이 소진된다. 미술의 세계는 다른가? 미술이 언제 시대상과 분리되어 독자적으로 존재했던 적이 있었던가? 미술 역시 스펙타클-명성-자본의 활력으로 신나게 돌아가는 중이 아닌가?
이러한 와중에 서정배의 작품은 지리멸렬의 심연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는 애초부터 빈 껍데기같고 어떤 것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조형 언어로, 심드렁하게 작품을 차곡차곡 쌓아 나가고 있다. 조형언어를 통해 인간과 세계를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는 일종의 포기감이 그의 작품 전반에 서려 있는 것만 같다. 그의 작품은 인류가 공감하는 감정의 가장 큰 영역이 소통이 아닌 불통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도 개인적인 사건들과 연루된 것이 확실한 (그래서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결코 알 수 없는) 어떤 장면, 그래서 구체적으로 그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조차 부적절해 보이는 그러한 장면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붉은 나무나 ‘불안의 형태’ 도형들, 심장의 형태, ‘I am wrong’ 같은 반복되는 글자들은 틀림없이 개인적이고 내밀한 동기가 있을 것이고, 그것들을 마치 종교화의 도상처럼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만, 그 응축된 형태들의 사연을 하나하나 캐물어도 얻어지는 통찰은 없을 것이다. 어느 한 사람의 개인적 일상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란 기실 듣는다고 이해되는 것도 아니며, 그러한 노력은 대개 무의미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무기력하고 우울해 보이는 그림 속 인물들에게 느낄 수 있는 공감의 정서와는 별개로, 개인적 상징을 해독한다 한들 그것이 한 사람의 절뚝거리는 일상이라는 것 이외의 거대 서사가 존재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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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Wrong_53x39cm_Oil on hardboard paper_2017

게다가 그는 자기 자신이 아닌 ‘키키’라는 대리자의 얼굴과 목소리를 빌어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는데, 이 인물은 고스란히 작가 자신의 현실과 환상, 실재와 상상 사이에서 부유하는 심리적 대리주체일 것이다. 왜 그는 자신이 직접 나서서,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을 그리거나 자신의 메시지를 표방하는 대신 대리자를 상정한 것일까. 자기 자신이 주인공인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인데, 굳이 이름까지 붙인 제3자를 왜 끌어들인 것일까. 한 사람의 목소리로 여러 인격을 연기하는 복화술사처럼, 혹은 가면을 쓴 사람처럼, 명확하게 구분될 수 없는 인물의 존재는 어쩌면 자신의 이야기를 부단히 유예시키는 행위처럼 보이기도 한다. 일기를 써 나가듯이 지나치는 감정들을 소재로 하건대, 화자를 자신과 분리하여 객관화시키는 이러한 행위 자체는 상당히 흥미롭다.
서정배가 작품 속에 내세우는 인물인 ‘키키’는 작가가 시키는 연기를 하고 있다. 늘 불분명한 그림 속 공간에 위치했던 키키는 가재도구들을 연극무대처럼 배치하는 설치 작품을 통해  3차원 공간으로 진입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주인공 키키의 장소는 특정하기 어려운 애매한 공간들이며, 외로움의 소용돌이에서 헤매고 있고, 특별한 손짓으로 알 수 없는 메시지를 전하며, 도플갱어처럼 보이는 인물상들이 그녀를 따라다닌다.
작가는 이 인물이 표현하는 정서를 아마도 ‘멜랑콜리’와 연관시키는 듯 하다. 키키의 일기장처럼 보이는 출판물 ‘검은 담즙’은, 인간의 본질과 생리 및 병리적 특성을 몸에 존재하는 체액의 구분으로 설명하는 서양의 초기 의학론에 기반한 용어이다. 한 가지의 체약을 지나치게 갖게 될 때 생리현상의 장애가 나타나고 인간의 외관이 비정상적으로 변화된다는 이론인데, ‘검은 담즙’을 지나치게 보유한 이의 정신적 특성이 ‘멜랑콜리’라는 것이다. 작가는 <멜랑콜리적 일기>라는 작품 제목으로 직접 이 개념을 언급하기도 했다.
멜랑콜리의 정서를 표현한 미술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작품은 무엇보다도 알브레히트 뒤러의 <멜랑콜리아 I>이다. 턱을 손으로 괸 전형적인 멜랑콜리의 자세를 하고 바위에 앉아 생각에 빠진 인물을 대패, 못, 칼, 각종 목공 기구들, 모래시계, 저울, 기하학적 숫자판(마방진) 등의 상징적 물건들이 둘러싸고 있다. 어두운 표정을 한 인물은 눈을 뜨고 있지만 무엇을 바라보는 모습이기보다는 깊은 내면적 사유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뒤러의 인물이 해석 가능한 주변의 상징들과 더불어 사유하는 인물로 보이는 반면, 서정배의 키키가 보여주는 멜랑콜리는 지극히 개인적 상징들과 개인적 사건들에 둘러싸여 무기력과 음울함과 공허감이 강조되어 있다. 서정배의 멜랑콜리는 세계에 대한 이해불가능성 내지는 종말적 세계관을 드러내기보다, 삶을 조용히 참고 견디는 방식으로서의 그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 속에는 흐르는 시간과 그 속의 하찮은 경험들, 그 가운데 지워지지 않고 남는 어떤 이미지들이 그만의 멜랑콜리적 상징으로 기능하고 있다. 빨려들 것 같은 소용돌이, 뾰족뾰족하게 날이 선 이미지, 몸을 뚫고 나올 것 같은 나뭇가지들, 꺾인 손의 자세 등은 이미지가 만들어진 계기를 정확히 알 수 없어도 그것이 주인공의 마음을 꿰뚫는 뭉근한 고통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골방에 틀어박히거나 유령처럼 배회하는 키키는, 작가 서정배에게는 자신의 심미적 감정을 대신 표현해주는 대상일 것이지만, 관객에게는 실용주의적 관점의 인생에 결코 필요치 않으나 언젠가는 맞닥뜨리게 될 실존적 각성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키키는 필연적으로 고독하고 대단히 비생산적으로 보이며 구름이나 안개처럼 부유하는 인물처럼 보이지만, 그러한 특성으로 인해 은밀한 저항적 정체성을 획득할 수도 있다. 끝나지 않는 서정배 작가의 멜랑콜리한 인물로로 인해, 그의 길고 긴 이야기들에 때때로 귀를 기울이며, 관객은 자신의 실존적 템포를 다시 정비하게 되는 것이다.               

 

Seo Jeong-Bae’s Never-Ending Melancholy

Lee Yoon Hee (Chief Curator, Cheongju Museum of Art)

Seo Jeong-bae is in the middle of telling a very long story, and there is no knowing when it will end. While her story does not have a clear narrative structure, it somehow makes you feel gloomy and lonely in an obscure way.  Though a figure, perceived as one person, appears continuously in her works,  she does not seem to be speaking of a special event, but rather to be randomly freezing certain moments of the day. The scenes appear to contain profound and mysterious emotions. Lethargic music seems to be playing in her paintings, filled with unidentifiable, cigarette-smoke-like uneasiness and consequent fatigue that go on and on.   
Actually, with the exception of immature children, no one can express everything he/she feels in the passing of time throughout life. Thus it is difficult to reveal and express in real life the “mood of sinking down,” which the figure squatting in Seo’s paintings seems to be feeling. There is no human in the world who does not experience melancholy, and expressing it will not help much. Whatever one does, however one lives, he/she will taste loss and failure, and in the end will die with piercing regrets. In real life, it is impossible to know a clear ethical code by which to interpret and evaluate one’s own life, and even passion for a better life or plans to live life more fully easily result in a sense of futility, even if they are achieved. Even the rosy hope that the world will advance through one’s sacrifice is not something of this era. What is true, however, is that facing such a world and expressing one’s emotions is a temperament to be overcome. Perhaps the reason for the overflow of melancholiacs, labeled with various disease names, is that such a tragic worldview is diagnosed as something to be overcome. Individuals are urged to become gears of the world, to more energetically grind their lives into society, while most of their lives are spent trying to adapt to the world, which is changing so rapidly that further contemplation is impossible. Is the world of art different? Has art ever existed independently, separated from the phases of the times? Is not art also cheerfully spinning with the vitality of spectacle-fame-capital?

Amidst this situation, Seo Jeong-bae’s works attempt to talk about the depths of incoherence. From the very beginning, Seo has accumulated her works one by one with a rather detached attitude, through a formative language that, like an empty shell, cannot fully capture anything. It seems that a certain sense of abandonment, that humans and the world cannot be soundly expressed through formative language, is present throughout her works. Perhaps her works are saying that the greatest realm of emotion humankind identifies with is not communication but isolation. Certain scenes that are clearly linked to highly personal events (making it impossible to comprehend them no matter how hard one looks), and therefore that make it feel improper to ask about them specifically, constantly appear. Red trees, “unstable forms,” heart shapes, and the repeated text “I am wrong” no doubt contain intimate personal motives, and though it feels as if they are being used repeatedly like icons in religious paintings, no insight will be gained by prying into each story of the condensed figures. The personal daily life of an individual and the events that take place there are not something that can be understood even if one listens, and such efforts tend to turn out meaningless. Besides the empathy felt for the lethargic, gloomy figures in the paintings, I do not believe there is a grand narrative behind the encrypted personal symbols other than that this is the limping daily life of some person.  

Moreover, the artist narrates her story not through her own voice but through that of a representative called “Kiki.” This figure is no doubt the psychological substitute-subject drifting between the artist’s reality and fantasy, reality and imagination. Why has the artist established a proxy instead of coming out to paint what she saw with her own eyes or to declare her own message? Why does she bring in a third person with a name, considering that this is not much different from making herself the main character? Like a ventriloquist, who acts multiple personalities with one person’s voice, or someone wearing a mask, the existence of an indistinct figure is perhaps the act of endlessly deferring her own story. This behavior of working with the subject matter of passing emotions as if writing a journal, while objectifying it by detaching herself from the storyteller, is fascinating.

“Kiki,” the main character placed in the work by Seo Jeong-bae, is acting according to the artist’s direction. Kiki, heretofore positioned in spaces within obscure pictures, now enters three-dimensional space as well, through an installation work with household utensils arranged as on a theater stage. But the heroine Kiki’s place is still in ambiguous spaces difficult to determine, and she continues to wander in the vortex of loneliness, to convey unknown messages with her special hand gestures, as doppelganger-like figures follow her around.
 
The artist seems to be linking the sentiment expressed by this character with “melancholy.” The publication Black Bile, apparently Kiki’s diary, uses terms based on early Western medical theory, explaining the essence, physiology and pathological characteristics of humans based on the different fluids in their bodies. According to this theory, when one has an excess amount of a certain body fluid, physiological problems occur and personal appearance also changes abnormally; and the name given to the psychological characteristic of one with an excess amount of “black bile” is “melancholia.” The artist has mentioned this concept directly in her work titled Melancholic Diary.
 
The most renowned artwork expressing the sentiment of melancholy in the history of art is Melancholia I by Albrecht Dürer. In that picture, a figure sitting on a rock immersed in deep thought, resting her chin on her hand in the typical melancholic posture, is surrounded by symbolic objects such as a plane, nails, knife and other carpenter’s tools, an hourglass, a scale and a geometric number chart (magic square). She has a gloomy expression, and though her eyes are open, she seems to be submerged in deep inner contemplation, rather than gazing at something. In the Dürer Melancholia  figure's contemplation of something, she is accompanied by interpretable surrounding symbols, but the melancholy demonstrated by Seo Jeong-bae’s Kiki is surrounded by extremely personal symbols and events, emphasizing lethargy, gloominess and emptiness. Seo’s melancholy does not reveal the impossibility of understanding the world or an apocalyptic world view, but seems to represent a method of quietly suffering and enduring life.
 
Therefore in her paintings, the flowing time, the trifling experiences within that time, and the images that remain without being erased function as melancholic symbols unique to the artist. A vortex ready to suck you in, sharp-pointed images, tree branches threatening to penetrate the body, postures with bent hands, etc., provide no precise clues as to how they were made; however, it can be felt that they are images of pain that constantly penetrate the heart of the main character. Kiki, stuck in a small room or loitering like a ghost, is no doubt a subject that represents the artist’s own aesthetic emotions, but for spectators she plays the role of evoking existential awareness, which is unnecessary in a life of practical perspective, but which they will one day come to face. Kiki seems like a lonely, extremely nonproductive figure, drifting like a cloud of fog; however, due to these characteristics she may gain a secret resistant identity. Thanks to Seo Jeong-bae’s never-ending melancholic character, spectators can occasionally listen to her long, long stories, and re-adjust their existential temp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