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感性)의 인식

 

조수빈(독립큐레이터)

 

서정배 작가의 작품과 첫 만남은 그녀의 <멜랑콜리적 일기>라는 제목의 드로잉들이였다. 나에게 다가온 첫인상은 한 여자의 우울과 고독이였고 그 다음 분리, 해체 그리고 조각난 그녀의 의식이였다. 긴 검은 머리의 한 여자, 그녀의 몸짓이나 표정에서는 어떠한 생기도 발견할 수 없다. 하지만 그녀는 깨어있고 이야기 하고 있었다.

작가의 텍스트 제목인 <검은 담즙>의 근원은 그리스어인 Melanie(검은) chole(담즙)이다. 고대 병의 일부 취부되었던 부정적 의미인 멜랑콜리는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하이데거 그리고 뒤러의 작품등에 의해 예술사 안에서 예술의 근원으로 재해석되었다. 서양미술사 안에서 수 세기에 걸쳐 끊임없이 등장하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있는 자세는 멜랑콜리를 상징하는 자세이다. 존재의 무게감을 지탱하며 균형을 이루기 위한 이 몸짓은 우울, 슬픔의 감정을 넘어 자신에 대한 자각이며 인식(conscience)의 행위이다.

서정배작가의 관심은 일상의 감성에 대한 이러한 인식의 관념화이다. 인간의 감성, 그로 인해 유발되는 사색과 인식이라는 추상적인 것을 “관념적 오브제”를 통한 시각화를 시도했다.

작가는 이러한 과정을 보여주기 위하여 KIKI라는 인물를 만들었다. KIKI는 텍스트, 설치, 드로잉을 통해 우리를 그녀의 의식적 담화 속으로 끌어들인다.

 

검은 담즙이란 제목의 키키의 텍스트는 두 파트로 나뉘어 있다. 첫 파트에서는 “여자”가 되길 원하는 키키의 파리 일상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일상 속에서 우연한 만남, 버려진 의자, 테이블 위에 뒹구는 사과등 주위의 모든 것은 그녀의 감수성을 깨우고 그녀가 머문 자리는 그녀의 감정과 사색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두 번째 파트는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그녀가 원래 있었던 자리”로 돌아온 후의 이야기이다. 원래 있었던 곳, 그녀가 “존재하기 시작된 곳”으로의 회귀는 잊고 있었던 아련한 추억도, 그 동안의 상실감을 채워주는 만족도 아니였다. 세월이 흘러 다시 바라보면 예전의 풍경도 전혀 다르게 보인다. 그것은 흘러가 버린 것에 대한 쓸쓸함이나 안타까움이 아닌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에 대한 충돌이며, 화해이며, 그로 인한 지금 이 순간, 현존하는 자신의 감성에 대한 깊은 성찰이다.  작가의 드로잉작업은 그녀의 분리되고 해체된 의식의 조각들이다. 내적인 혹은 외적인 영향의 결과인 감각을 포착해 분해하고 재조립한 이미지들이다. 그녀의 드로잉 안에는 존재의 무게의 힘겨움을 향한 강렬한 외침이나 저항은 없다. 깊은 내면을 향한 진지한 침묵 속에 한 여자가 보인다.

우리는 타인의 관계에서, 외적인 힘이 만나면 감각이 발생한다. 나와 타인은 분리되지만 연결되고, 연결되지만 분리 될 수 밖에 없는 관계 속에서 우리는 서로 끊임없이 귀 기울이기를 노력하고  다시 자신의 내면으로 돌아온다. 완전한 공감에 대한 기대와 열망은 실망을 낳고 실망은 상실감을 갖게 한다. 이러한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우리는 누구나 비밀을 간직한다. 그것은 아주 중요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더라도 타인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것일 수 도 있고, 말로 내뱉는 순간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될까봐 두려운 것 아주 ‘개인적인 것’일 수 있다.

                                               

그 때 작가의 눈 앞에 한 그루의 감나무가 있었다. 늘 자신의 눈 앞에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아무런 편견없이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들어 줄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였다. 괜찮다고 토닥이지도 어리석다고 나무라지도 않는 그렇게 가만히 들어 줄 수 있는 나무, 그에게는 거창하게 말을 꾸미지 않아도, 혹 왜곡될까봐 조심스럽게 신경써서 이야기 해야 할 필요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내 감정과 생각을 전달할 수 있었다.

하루 하루 나의 곁에서 아무 말없이 나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나무는 잎을 피울 수 없다. 나의 무게를 감당하기위해 작은 잎사귀하나 피울 수 없는, 땅을 붙잡고 곧게 뿌리를 내릴 수 없는 나무, 이젠 나만이 그를 감싸안는다.

작가의 설치작업 <KIKI>, <사유의 장치>, <관념의 나무>등의 빨강과 파랑의 네온 빛은 작가의 내면에 대한 의식의 발현이라 할 수 있다.

 

작가에게 빨간색은 아주 내적인 색이다. 여러 드로잉에서와 작가의 초창기 설치작업인 키키의 방은 빨강으로 덮혀있다. 우리는 주인 없는 방을 엿볼 수 는 있지만 들어가기는 꺼려진다. 너무 개인적이고 내적인 공간에 선뜻 발을 들여놓기가 쉽지 않다. 빨강 옷장과 빨간 간이침대 그리고 한가운데 그녀가 존재했던 의자, 그녀는 ‘거기 있었다. 그리고 없다’. 그녀의 방은 배우가 떠난 남겨진 무대의 한 장면과 같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아무런 시각적 움직임이 없는 정지된 시간 하지만 주름진 옷가지 반쯤 열린 서랍은 존재를 확인시켜준다. 존재는 의식이다. 내면의 움직임은 의식의 움직임을 말한다. 

< "나는 도대체 무엇을 기대하는가..." 그녀가 무심한 말을 내뱉는다. 이처럼 기대하고 기다리는 느낌을 자신이 죽을 때까지 간직할 것만 같아 오늘 그녀는 다시 익숙한 절망감을 느낀다. 사실상, 그녀의 기대 속 기다림은 대상을 향한 기다림이 아니다.-작가 텍스트  중 ->                  

 

드로잉 속 KIKI는 한 여름의 열기를 조금이라도 피하기 위해 손을 뻗어 손바닥으로 이글거리는 태양을 가려본다. 끝이 보이지 않는 도로에 뜨겁게 내려 쬐는 태양, 몸의 모든 수분을 다 빼앗아버리는 것같다. 손으로 가려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이렇게 끝이 보이지 길을 언제까지 걸어가야만 할까? 길 끝의 무엇을 기대하며 걸어가는 것일까?

그녀의 말대로 그것은 어떤 대상을 향한 욕망이 아니다. 저 마음 깊숙이 무겁게 존재하는 자아를 향한 것이다.

우리의 가장 깊숙이 눌러왔던 소위 부정적이라 폄하되었던 인간의 감정들, 우울, 불안, 혼돈, 고독, 모든 인간의 공통적인 감정이자 정반대되는 감정들의 근원일 지도 모른다. 하루 하루의 일상 속에서 우리는 타인의 감정에 노출되어 있으며 그 감정들은 쉴 새 없이 방향을 바꾸고 끊어지며 깨어지고 비틀리고 자기 자신 속으로 되돌아 오기도 하고 감기거나 그의 자연적 한계 너머까지 연장되기도 하면서 무질서 속에서 사라진다.

작가의 개인적이면서 주관적인 내적 의식에 대한 시각화된 이미지들은 그 자체로 보는 이들에게 또 다른 사고를 낳게한다. 작가의 이러한 오브제는 보는 이들의 무의식의 층을 건드리며 누구나 품고 있는 감성을 불러 일으킨다. 이는 작가에 의해 의도된 것이라기 보다는 우리의 시각적 감각에 의해 발현되어 각자의 의식의 가지를 뻗게 하는 그녀의 내면적 인식에 대한 이미지의 힘이다. 

서정배 작가는 이러한 일상 안에 떠다니는 감성들을 포착하여 내면의 인식화의 과정을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감성의 이성적 행위, 감성의 관념화의 과정인 것이다.  KIKI의 계속되는 섬세하고 지적인 감각들, 그녀 스스로 감성을 인지하고, 또 인식(conscience) 하는 이야기들은 통해 우리의 자신의 감성의 인식의 기회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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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8월_Last August_37×50cm_Pencil on paper_2015

Cognition of Sentiment

 

Cho Soo-Bin

(Independent Curator)

 

My first memory about the artist Seo Jeong-Bae goes back to her drawings titled “The Melancholic Journal”. The first impression to me was melancholy and solitude of a woman, and then separation, dissolution and her conscience broken into pieces. A woman with long, black hair, we cannot find any vitality in her gesture or facial expression. But she was awake and talking.

 

The origin of title of her text “La Bile Noire (the black bile)” is the Greek words melanie (black) + chole (bile). Melancholy, treated negatively as a disease in ancient times, has been reinterpreted as a source of art in the history of art by Aristoteles, Kant, Heidegger, and also through the works of Dürer. In the history of Western art, the pose of cupping one’s chin in one hand is constantly recurring as a symbolic pose of melancholy. Supporting the weight of existence, this pose pursues a balance. Beyond the simple feeling of gloom and sadness, this is an act of cognizing oneself, an act of conscience.

 

The artiste Seo Jeong-Bae is interested in ideation of this conscience of sentiments in everyday life. Via her “conceptual objet”, Seo has tried the visualization of the abstract that are human sentiments, then thoughts and consciences caused by them. The artist created a character named “Kiki” to show this procedure. Through the medium such as text, installation and drawing, Kiki invites us into her discourse of conscience.

 

Kiki’s text titled “La Bile Noire” is divided into two parts. In the first part, the story starts with the girl Kiki who wants to be a “woman” and her everyday life in Paris. Casual encounters in routine life, an abandoned chair, an apple rolling over the table… everything surrounding her awakes her sensitivity.  The place where she had stayed keeps the traces of her emotions and thoughts just as they were.

 

The second part, according to the artist’s words, the story after her returning to “the place where she used to be” Return to the place where she used to be, “the place where she started to exist” didn’t consist in either forgotten vague souvenirs or a consolation to compensate the accumulated void. When we look back after a while, the landscape of the past looks completely different. It’s not a loneliness or frustration over something already past, but the conflict and the reconciliation between who I am and who I was, and the profound reflection on the present sentiment of myself, at this very moment. Her drawings are the separated and dissolved fragments of conscience of the artist. Or they are the disassembled then reconstructed images with captured senses made out of internal or external influence. In her drawings, we cannot find a fierce cry or resistance to the hardship of bearing the weight of the existence. We only see a woman, in a thoughtful silence toward her deep inner self.

 

In a relationship with other people, senses are generated by external influence. Self and other are in relation of being divided but connected, connected but divided. We make constant efforts to listen to each other, and then return to our inner self. If we expect or aspire a perfect sympathy, we will be disappointed and suffer from sense of loss. In such relationship with others, everyone keeps secrets. They may not be something important or huge, but still delicate to tell someone, such personal things that make us afraid of being ridiculed as trivial once they are told.

                                               

In such a situation, there was a persimmon tree in front of the eyes of the artist. That tree that is always be there near her, was the only living thing who can listen to all her intimate stories without any prejudice in an absolute silence. It just listened, without consoling or criticizing. So she could tell all her feelings and thoughts just as they were. No need to exaggerate or to be anxious about being misunderstood.

 

The tree embracing my everything without a word cannot sprout any leaves. It cannot either sprout one small leaf, or take a firm root deep in the ground. It just supports the weight of my existence, and only I embrace the tree.

  

The red and blue neon light in Seo’s installation works such as “Kiki”, “The Tree of reflection” and “The Device of reflection” can be said to be a manifestation of the conscience of the artist’s inner self.

 

The red is very intrinsic color to the artiste. In many of her drawings and early installation works, the room of Kiki is covered with red. The owner of the room being absent, we can peep into this room but we are reluctant to enter because it will be a step into a space that is too personal and intimate. Red wardrobe, red temporary bed and the chair in the middle where she existed show us that “She was there and isn’t there any more”. Her room is like a scene of an empty stage left behind after the actor disappeared. There is a stopped time without any sound or visual movement. But those wrinkled clothes and half-open drawers witness someone’s existence. Existence is conscience. Inner movement means the movement of conscience.

 

 “What on earth am I expecting…?” she sighed some indifferent words. She feels a familiar frustration as if this sensation of waiting and expecting would continue until she dies. In fact, the waiting in her expectation is not a waiting for a specific object.

- From the artist’s text

 

Kiki in the drawing blocks the blazing sun with her hand stretched forward to escape from the midsummer heat. The sun over an endlessly road seems to deprive of all the moisture of the body. No use to block it with hands. When will this road end? What am I expecting to meet at the end of this road?

As she said, it is not a desire toward a specific object. If any, it is toward the inner self existing heavily far deep in the mind.

 

Human sentiments oppressed deep inside, underestimated as negative, such as melancholy, anxiety, confusion, solitude are common in every human being, at the same time they might be the source of contradictory emotions. Day by day, we are exposed to other people’s emotions and those emotions keep changing direction, being disrupted, broken, twisted, coming back to oneself, tangled, or extended beyond the natural limit, then disappear in a chaos.

 

The visualized images about the artist’s personal and subjective inner conscience generate other thoughts in viewers’ mind. Those objets touch the layer of unconsciousness of viewers and arouse the sensitivity existing in every human being. This is not so much intended by the artist as it is thanks to the power of the images about her inner conscience, which is triggered by our visual perception and makes each viewer to expand his/her own conscience.

  

Seo Jeong-Bae tried to capture these sentiments floating in everyday life, then to show the procedure of cognition of inner self. This is a rational act of sentiment, a process of ideation of sentiment. Through Kiki’s constantly fine and intelligent senses as well as her stories of realizing her own sentiments and conscience, I look forward to the opportunity to cognize our own senti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