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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하므로, 고로 존재한다

 

유명종(시인, 문화평론가)

문학에 비유하면 서정배의 작업은 시각 언어로 쓴 산문이다. 그의 일련의 드로잉, 설치, 사진, 오브제에는 서사성이 습기처럼 배어있다. 이 서사 담론을 이야기, 에세이, 소설적 구성이라고 바꾸어 표현해도 무방할 것이다. 사전적으로 이야기(narrative)란 일정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는 말이나 글을 일컫지만, 그것이 꼭 문자 언어일 필요는 없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연극, 영화, 무용도 고유한 서사 담론을 품고 있다.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서정배의 경우처럼 시각 언어에도 고유해서 대체 불가능한 또는 변형 불가능한 서사 담론은 존재한다. 시각 언어의 산문화, 또는 서사화는 서정배 작업의 독특하고도 차별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이야기_부드럽고 촉촉한
서정배는 ‘특별할 것 없는 특별한 일상’, 구체적으로는 내면에 탑재된 우울과 불안을 서사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특별할 것이 없는 이유는 인간이 운명적으로 품고 살아야 할 우울과 불안을 이야기하기 때문이고, 그럼에도 특별한 것은 패턴화‧범주화 하기 힘든, 작가 고유의 기억과 체험으로 내재화한 감정을, 작가 고유의 방식으로 발화하기 때문이다. 서정배의 작업에 나타나는 서사는 어떤 촉촉한 고뇌를 품고 있다. 그것은 격렬한 절망, 혹은 회복 불가능한 파국의 풍경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감성 깊은 불안이고, 부드러운 우울이다. 부재와 결핍을 동반하고 있지만 우울과 불안은 축소되거나 과장되어 있지 않다. 동시에 그것은 체념적이나 자해적이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실존적 불안이고 자기화한 우울이다. 그는 불안과 우울이라는 영혼의 주름을 산문화한다. 다시 한 번 말해보자. 서정배의 작업은 시각 언어로 쓴 에세이이다. 우울과 불안에 관한 부드럽고 촉촉한,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시적인.     

보여주기_거리 두기와 낯설게 하기
공연 예술에 비유하면 서정배의 작업은 연극에 가깝다. 그가 꾸민 전시 공간은 흡사 연극 무대를 연상시킨다. 그는 설명하기보다는 연극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불안과 우울을 보여준다. 서정배는 불안과 우울을 연출한다. 그러나 그 방식은 전통적인 방법과 거리가 있다. 일반적으로 전통적인 연극은 배우와 관객의 동일시를 지향한다. 몰입하고 감정적 교류를 하여 궁극적으로 관객으로 하여금 등장인물에 공감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서정배의 연극적 장치는 오히려 브레히트의 ‘낯설게 하기’를 떠올리게 한다. 관객을 무대 속으로 (또는 작품 안으로) 가까이 끌어들여 감정을 이입하게 하기보다는 일정한 거리를 두게 만든다. 작품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함으로써 작품과 관객 사이에 심리적 거리가 생기도록 하는 것이다. 연극 용어로 표현하면 소격 효과, 거리두기의 효과를 거두고 있는 셈이다.  
              
모호성_사유의 방  
시각 언어를 서사적으로 풀어내고, 여기에 더해 연극적 요소도 가미하지만 서정배의 이야기는 모호하고 불명확하다. 그것은 시각 예술이 숙명적으로 갖고 있는 메시지의 은유성에서 연유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서사와 연극의 기본 요소를 선의로 배제한 데서 기인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작가는 플롯, 사건의 구체화, 기승전결의 전개 등을 생략하거나 약화시킨다.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작품 전개 과정에서 선택된 은유성은 (혹은 모호성은) 의외의 성과를 불러온다. 낯설게 하기, 다시 말해 독자를 불편하게 하고 모호하게 하여 소격 효과와 거리두기의 효과를 착실하게 거두고 있는 것이다. 심리적 거리두기는 독자를 환기시킨다. 몰입과 교감이 아니라 상황을 객관화시켜 주는 것이다. 이제 독자는 (혹은 관객은) 작품에 감정을 이입하는 것이 아니라 시선을 자기의 내면으로 돌린다. 이제 관객은 (혹은 독자는) 자신의 특별하지 않은 특별한 내면 풍경의 어떤 편린, 불안과 우울의 감정과 대면하게 된다. 독자는 사유의 방으로 들어가 ‘자기 앞의 생’을 가만히 들여다볼 터이다. 그렇게 실존의 산책로를 걷다가, 어느 순간, 깨닫게 될 것이다. 우울하므로, 불안하므로,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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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의 방_Green room_73×53cm_Oil on canvas_2015

I’m anxious, therefore I am.

 

Yoo Myeong-Jong

(Poet, Culture critic)

 

Compared to literature, the works of Seo Jeong-bae is prose written with visual language. Her series of drawings, installations, photos and objets are imbued with narrativity like moisture. This narrative discourse can also be called story, essay or novelistic form. Lexically, narrative means a speech or a text with a fixed story and it does not have to be written language. As we already know, theater, cinema and dance also possess their unique narrative discourse. Even though it is more difficult to generalize, there also exists an irreplaceable or untransformable narrative discourse for the visual language just as the case of Seo Jeong-Bae’s works. Prosification or narrativization of visual language is one of the unique and distinctive characteristics of the work process of Seo.

 

Story_soft and moist

 

Seo describes narratively ‘a special everyday life without anything special’, more precisely her inner melancholy and anxiety. ‘Without anything special’, because these melancholy and anxiety are destiny for all human beings, but still ‘special’, because the artist speaks her own emotions internalized with her unique souvenirs and experiences, in her unique way. The narrative in works of Seo bears a certain moist anxiety. It is not a landscape of fierce depression or irreversible collapse, but a sensitive anxiety and soft melancholy ‘still going on’. Absence and deficiency are clearly there, but melancholy and anxiety are neither reduced nor exaggerated. At the same time, they are neither resigned nor self-injuring. That’s rather existential anxiety and personalized melancholy. Seo prosifies the wrinkles of soul, which are anxiety and melancholy. Let’s say it again. The works of Seo are essays written with visual language. About melancholy and anxiety, soft and moist, and poetic in a certain aspect.

 

Showing_distanciation and alienation

 

Compared to performing arts, Seo’s works are close to theater. The exhibition space worked by Seo reminds us of a theater stage. She shows the anxiety and melancholy, importing very actively theatrical elements. But the method is different from the traditional ones. In general, traditional theater aims to identification of actor and audience. Assimilation and emotional exchange invite the audience to sympathize with the character. But Seo’s theatrical disposition rather reminds of ‘alienation effect’ of Brecht. It makes the viewer to keep a certain distance from the work, rather than to attract the viewer close into the stage (or into the work) and to lead empathy. It keeps the viewer from concentration on the work, so that there can be a psychological distance between the work and the viewer. Using the technical term of theater, ‘alienation effect’, the effect of distanciation has been created.

 

Ambiguity_Room of Thought

 

Even though the visual language creates narrative and the theatrical elements are added, the story of Seo still remains ambiguous and unclear. On one hand, it’s because of the nature of the message of visual art which is destined to be metaphoric. On the other hand, it’s due to the fact that the basic elements of narrative and theater are intentionally excluded by the artist.

 

For example, the artist omits or attenuates certain elements such as the plot, concretization of events, development of narrative arc, etc. An important phenomenon occurs from that point. The metaphoric nature (or ambiguity) chosen in the process of developing the work results in unexpected fruit. That’s the effect of alienation and distanciation, in other words, making the viewer embarrassed and ambiguous. Psycological distanciation refreshens the viewer. Instead of assimilation and empathy, it turns the situation objective. The viewer (or the audience) contemplates his/her inner self, instead of feeling empathy toward the work. The audience (or the viewer) gets to face a fragment of his/her ‘special’ inner landscape ‘without anything special’, the emotion of anxiety and melancholy. The viewer would walk into a room of thoughts, and gaze quietly his/her ‘life in front’. In the middle of walking the promenade of existence, he/she will realize suddenly that he/she feels anxiety, melancholy, therefore he/she 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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