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어떻게 보여질 수 있는가?
이 영 욱(미술평론가)


1. 아마도 나는 그녀의 작업에 대해 가타부타 말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지 못한 것 아닌가 싶다. 십 수 년에 달하는 작업 경력을 일관하여 서정배는 여성으로서 자신이 느끼고 경험하고 포착한 감성과 서사를 작업으로 선보여 왔다. 나는 남성으로서 그 속내에 다가가는데 부족함이 있다고 느낀다. 작업 속 인물(여성)이 마음 속 피를 흘릴 때 나는 그 구체성을 감지하지 못하는 듯하다. 하지만 예술의 역할이 이미 감지하거나 알고 있는 무엇을 전달하거나 확인하는 데 그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작가 편에서 예술은 차라리 그 같은 감성과 서사를 바탕으로 다양한 통로를 가진 시각적 텍스트를 만들어 내는 일에 가깝고, 관객들 편에서는 그 텍스트의 교직 안으로 들어가 각자의 새로운 텍스트를 만들어 가는 일에 가깝다. 사실 완전한 소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차라리 소통은 다가감, 혹은 오해를 통한 이해의 그 잠정적임 자체에 있는 지도 모른다.

2. 20대 후반 파리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한 서정배가 처음 관심을 가진 것은 ‘하이힐’이라는 오브제였다. 하이힐은 나름 단순치 않은 표상을 가진 사물이다. 작가는 이 하이힐을 일종의 페티시(물신)로 다뤘다고 말한다. 작가가 하이힐을 어떤 방식의 물신화를 염두에 두고 다뤘는지는 불분명하다. 곧 남성들의 물신화인지, 아니면 스스로 동일시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양자를 포괄하는 어떤 사이공간을 넘나들고 있는 것인지... 하지만 내 식으로 읽는다면 나는 그녀가 하이힐을 일종의 ‘갑옷 입은 여성’으로 동일시하고 있다고 느낀다. 갑옷은 일차적으로 보호를 위한 것이다. 연약하고 혼돈에 처한 자아를 외부의 공격과 충격으로부터 보호하고 막아주는 물건. 하지만 갑옷은 동시에 전장에 나서 싸우기 위한 장비기도 하다. 매혹적으로 굴곡진 하지만 인공적, 공격적으로 단순해진 신체, 그 높이와 자태...     
당시 작업은 하이힐의 이 같은 표상과 공명한다. 사진 작업 <나는 다른 이들을 본다>(2006)는 하이힐을 신은 양 다리를 전면에 부각시키고, 그 사이 보이는 골목 길 저 끝에 세상의 모습이 보인다. 하이힐은 바깥세상과 대치하고 있다. <흐르는 구두>(2007)에서는 마치 갑옷을 입듯 하이힐에 발을 넣는 일련의 사진들이 연속적으로 선보인다. 나는 거기에서 매번 갑옷을 입고 벗는 여성들의 일상, 그 난관을 느낀다. <흐르는 구두>(2004)에선 접시 위에 투명 플라스틱으로 부조된 하이힐 모양의 오브제가 놓여 있고, 그 한쪽 귀퉁이에 빨간 점들이 떨어져 물들어있다. 갑옷을 입고 벗는 일 혹은 갑옷과 더불어 사는 일은 피 흘리는 일이다.

3. 2008년 서정배는 하이힐 작업을 중단한다. 그녀에 따르면 “내가 말하는 여성과 정체성의 문제는 담론을 담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마도 하이힐이 표상하는 의미가 지나치게 페미니스트 담론의 문맥에서 해석되는 데 거부감이 있었던 것 같다. 아니 작가는 실상은 다름 아닌 갑옷을 벗겨낸 그 안쪽 속살의 이야기, 곧 좀 더 내밀한 감정과 서사를 표출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키키는 이런 문맥에서 출현한다. 그녀는 오랜 동안 일기를 써왔고, 한참 지나 다시 일기를 읽어볼 때면 그 내용이 객관화되어 달리 읽히는 것을 느꼈다 한다. 이 객관화된 시점에 착목하여, 그녀는 키키라는 가상 인물을 상정하고 자신의 일기를 작품화하기로 결정한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그녀의 지속적인 연작, “키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키키 이야기’ 초기 작업 <키키 이야기>(2008)은 사진 이미지들이 병렬된 작업이다. 중간 중간에는 텍스트들이 끼어있다. 일단 눈에 띠는 것은 무릎 바로 위에서 발까지 캐스팅한 다리 이미지들이다. 다양한 일상의 정경들과 대비되어 배치된 이 하얀 다리는 하이힐을 벗고 맨살을 드러낸 ‘키키 이야기’의 새로운 지향을 예시하는 듯하다. 그 밖의 다른 여러 이미지들 역시 키키와 연관된 것들이다. 거리풍경, 집의 외관 등 일상의 이미지들. 중간 중간의 시적 혹은 지표적 텍스트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단편적, 일시적인 병렬된 사진이미지들로부터 나름의 이야기를 상상하고 이끌어내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단속적 이미지들의 병렬은 불가피하게 모호하고 열려있는 의미망의 구성으로 이어지며, 따라서 알레고리의 성격을 갖는다(이 작업들은 나중에 <검은 담즙>이라는 책으로 묶여 나온다).

4. 이 시기 이후 작업은 다양한 작업 양상이 공존하는 가운데 주로 공간 속에서 이야기 전달가능성을 실험하는 일련의 설치작업으로 이어진다. <그녀의 관념창고>(2012)는 폐허를 연상시키는 건물 속 공간을 배경으로 캐스팅한 다리, 벽에 부착된 텍스트, 떠다니는 기표, 오브제 등을 병치한 작업이며, <기억을 위한 공간>(2009~2014)은 작가가 선택하고 구성한 소품을 통해 일종의 무대 공간 같은 방을 조성한 작업이다. 앞의 작업의 경우 파편처럼 흩어진 오브제들이 황폐한 공간의 분위기와 함께 역시 일종의 알레고리적 상상을 촉발시키는 반면, 후자는 관객들이 그 방에 거주하는 키키의 감정, 멜랑콜리, 우울, 불안 등을 공감할 수 있게끔 다양한 장치(조명, 색채, 기물의 배치방식)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좀 더 주목해 볼 필요가 있는 작업은 <멜랑꼴리적 일기>(2010~2014)다. 이 작업은 20여개의 크기가 다른 회화 혹은 드로잉들을 벽 위에 구성적으로 재배치하고, 소품을 첨가한 벽면 설치작업이다. 이 작업에선 앞의 두 작업과 달리 키키의 모습과 이야기가 훨씬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각각의 장면은 명확히 알 수 없지만 분명히 모종의 사건적 상황들을 암시하고 있고, 인물들의 회화적 묘사는 충분히 표현적이어서 정서적 반응을 유발시킨다. 원래 키키 ‘이야기’로 시작된 그녀의 연작은 이전까지 알레고리적 서사나 정서적 동일시의 방법을 주로 활용했지만, 이제는 상대적으로 유기적 서사, 곧 말 그대로 일기를 ‘이야기’로 보여주는 방식에 가까워진다.

5. 2015~2016년 그녀는 주로 드로잉과 네온 작업을 활용한 설치작업을 선보인다. 이 작업은 감정이 표출되고 감지되는 상황을 네온-매체로 표현했던 이전 작업의 연속선상에 있다. 특징적인 것은 독특한 도형, 기이한 모형의 삼각 다면체들이 등장하는 것인데, 이들은 필경 불안의 전도체로 활용되고 있는 듯 보인다. 2017년에는 앞서 개별 작품으로 분리되었던 회화와 드로잉 이미지를 길고 투명한 트레싱지 위에 아크릴과 연필로 연속적으로 그려낸다. 작가는 아마도 분산된 이미지의 조합보다는 이미지의 연속에 따른 유동적 흐름에 더 방점을 찍고자 했던 것 같다. 이 시기 마치 병풍처럼 접혀 여러 면으로 드러나는 종이 위에 드로잉을 시도한 작업들 또한 마찬가지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된다. 그녀의 작업은 조금씩 단속에서 연속으로 이동하는 추이를 보인다.     

6.
몇몇 예외적인 작업들이 있지만, 이후 그녀의 작업은 긴 캔버스 롤에 연속적으로 회화적 드로잉 이미지를 그려 넣는 작업(예를 들어 <4월 다시 4월>[2018])으로 나름의 정점을 찍는다. 이 작업은 장면들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시기 여타 작업들 역시 대부분 개별 장면들이 각각의 캔버스 위에 그려지거나, 커다란 캔버스천 위에 장면들이 다양하게 변주되고 복합적으로 조합된 것들이다. 장면들은 상징주의적인 가하면, 표현주의적 강세가 두드러지기도 하며, 또 어떤 것들은 실사적이다. 이 장면들 각각은 그녀의 일기의 한 순간 혹은 개별 에피소드를 표상하는 것들이다. 그리하여 이 장면들은 이제 모든 작업의 원천이 되어, 각각 분리되거나 서로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하면서, 전체적으로는 약간은 불투명하고 모호한 상태의 유동적 흐름을 가진 서사를 산출해낸다. <4월 다시 4월>는 수십 개의 장면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장면들 각각은 누군가(키키)의 일상, 그 일상 속의 상황과 정서(불안, 멜랑꼬리)를 상기시킨다. 한편으로 이 작업은 서정배가 그간 추구해왔던 이야기-작업으로의 여정을 일정 수준에서 완성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이야기는 어딘가 모호하고, 반복된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모호함은 그 자체로는 상상의 열림을 추동하지만, 어떤 경우 그것은 불투명한 반복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실상 이 작업에서 장면들의 결합은 말 그대로 이야기로 운동하지 않으며, 개별 장면들은 예민한 감성의 표출에도 불구하고 장면 고유의 특이성을 드러내는 것 같지는 않다. 장면들은 상이하지만 유사하고, 그것들이 야기하는 감정 역시 다르지만 반복된다. 장면의 축적은 따라서 어떤 폭발을 향하기보다는 불투명한 일상에 갇히는 듯하다.    

7.
일상을 이야기로 시각화하는 문제는 쉽지 않다. 실상 텍스트와 긴밀히 결합된 그림책이나 만화가 아닐 경우, 혹은 이미 서사가 전제되어 있는 역사화나 사건화가 아닐 경우, 온전한 의미에서 시각적 서사는 난망하다. 서정배가 ‘키키 이야기’를 시각매체를 통해 들려주려 했을 때, 처음부터 다양한 방법을 탐색해 온 것은 불가피했다. 그녀는 알레고리적 서사를 탐색하기도 하고, 설치를 통해 공간을 조성하기도 했으며, 빛을 사용해 직접적인 감정 전달을 꾀하기도 했다. 그리고 말 그대로 일기 형식에 유사한 드로잉의 서사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상의 이야기가 예술이 되려면 어떤 식으로든 일상을 넘어서는 무언 가를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 온 카와라가 매일 매일을 숫자를 기록해 나가는 그 행위의 반복이 홀연 어떤 깨달음(이야기)을 유도한다던가, 낸 골딘이 자기 주변의 일상을 찍은 사진들의 집적이 한 구체적인 삶의 양상에 대한 공감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그런 것 아닌가 싶다.
서정배의 그간의 작업들 안에는 수많은 것들이 누적되고 축적되어 있다. 그녀는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불안과 멜랑꼬리, 감정과 이야기를 전달하려 탐색해 왔으며, 그 과정에서 실로 만만치 않은 풍부함과 다채로움을 실연해왔다. 필자는 그녀의 작업이 마치 물꼬를 튼 물이 펼쳐나가듯 새로운 통로를 따라 전개되어 나갈 것을 기대할 뿐이다.